어두운 현실 속 예술 작품에 말 걸기 : 재난과 예술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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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예술#음악. 미술#영화#전염병#역사#시대#예술가
재난의 시대에 있는 음악시대의 묘사부터 위안까지 13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였던 '첼라노 토마소'는 이후 유럽의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명상시를 썼다. 분노의 날 그날이 오면 세상의 만물이 잿더미로 변할 것이다. 다윗과 시비라가 예언했듯이. 이 시는 전 유럽의 수도들이 부르는 성가가 됐다. 장송미사곡, 즉 <레퀴엠>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Dies Irae(분노의 날)'이다. 모차르트를 비롯한 많은 작곡가들이 이 시에 선율을 부여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자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쾅 하는 광포한 합주와 함께 등장하는 무서운 합창이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베르디의 레퀴엠에 나오는 <디에스 이레>다.이 시는 레퀴엠에 등장하는 다른 성가 리베라메(Liberame)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는 분노의 날, 재난(calamitatis)과 고통(miserie)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인류가 상상해 온 재앙은 어떤 것이었을까. 성경 출애 구이는 "피로 변한 강물, 개구리·이·파리·메뚜기의 만연, 가축과 사람의 전염병, 우박, 세상이 어두워지고 집집마다 장남의 죽음"을 말한다. 지진, 홍수, 큰 불, 폭풍과 회오리바람도 항상 인간을 위협하고 괴롭혔다.그러나 다행이랄까, 예술적 영감을 위해서는 불행한 일일까. 클래식 음악의 시대는 상대적으로 인류가 대부분의 화를 회피하던 시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초기 바로크와 르네상스 음악의 수요가 늘었지만 클래식 팬들이 즐겨 듣는 음악은 지금도 대부분 18세기 중반 비발디, 바흐, 헨델의 전성기 이후 170여 년 기간에 나온 음악으로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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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와 아우구스틴의 가창 북부 독일 출신의 바흐와 헨델이 태어나기 6년 전인 1679년 신성로마제국의 남동단 빈을 페스트가 덮쳤다. 이 도시에서만 7만 6,000명이 숨진 것으로 추산됩니다.이 동네에는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거리 음악가 아우구스틴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페스트병에 걸린 도시를 아우구스틴이 걷다가 도랑에 빠졌다. 그는 그냥 잠이 들었어요. 날이 밝자 그를 발견한 사람들이 그를 시체라고 생각하고 흑사병으로 숨진 시신의 더미에 던졌다. 눈을 뜬 아우구스틴은 시체 속에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큰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아, 사랑하는 아우구스틴, 아우구스틴, 아우구스틴/모든 것이 끝장이야!/돈도 사랑도 모두 끝장이다/부자 동네의 빈에서 날마다 잔치였다/앞으로는 전염병은구나". 시체의 잔치일 뿐이지/아, 사랑하는 아우구스틴, 모든 것이 끝장이야! 사람들은 그를 시체 속에서 끌어내 주었다.이 노래의 선율은 윤석춘 선생이 가사를 붙인 '동료들아'라는 노래 가사로 친숙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될 수 없는 이 순진한 멜로디는 100년 뒤 빈에서 베토벤과 함께 활동한 작곡가 요한 네포묵 후멜이 화려한 변주곡을 만들었다. 유튜브에서 Hummel Augustin이라고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이 노래를 들으면 기이하게도 앞으로 한 세기 뒤 빈 궁정 오페라 감독으로 활동했던 작곡가 말러의 교향곡 5번 3악장이 떠오른다. 표현주의적 절규의 1, 2악장과 사랑의 노래에서 자연의 찬미로 이어지는 4, 5악장 사이에 낀 애매한 춤 악장이다. 중간부 홀츠크래퍼의 독특한 음향으로는 마른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차이콥스키와 비창, 그리고 콜레라가 재난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제6번 <비창>(1893)이다. 차이코프스키는 이 곡이 초연된 지 1주일 남짓 지난 뒤 당시 러시아에 만연한 콜레라로 세상을 떠났다. 어떤 사람은 그가 비소를 먹고 자살한 뒤 비소 중독과 같은 콜레라로 위장했다고 분석하지만 진실은 모른다.1악장. 주요 선율이 등장한 뒤 청천벽력 같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모든 악기의 광포한 질주가 시작된다. 과연 하늘을 검게 가리고 모든 것을 뜯어먹는 메뚜기 떼일까. 모든 것을 흘러내리는 쓰나미처럼 금관의 난폭한 외침이 잦아지면 슬프고 슬픈 현악의 주제가 회상된다. 목놓아 우는 격으로 한 줄기 위안을 찾은 것 같기도 하다.어디 위로해 보자. 유럽을 뒤흔든 페스트의 재 위에서 유년기를 보낸 안토니오 비발디의 성가는 어떨까. 작곡가로서의 비발디의 존재도 다소 사소한 재난 위에 탄생했다. 그가 뱃속에 있을 때 지진이 베네치아를 흔들었다. 놀란 마음은 이 아이를 도와주시면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기도했다. 아이는 약속대로 사제의 길을 걸었고 성당에서 고아 음악가를 가르치는 음악 신부가 됐다.음악영화 '샤인'에 삽입된 비발디의 성가 '세상에 평화로 없다(Nullain mondopax sincera)'를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의 청아한 목소리로 듣는다. 비참함으로부터 자유 없이는 이 세상에 진정한 평화는 없다. 세상은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숨겨진 상처로 썩어가는구나. 징벌과 고통 속에서도 평안한 영혼은 순결한 사랑을 희구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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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뱃속의 아이, 그리고 에곤 실레의 목숨까지 앗아간 스페인 독감의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젊은 남자가 벌거벗은 채 침대에 앉아 있다. 평소 그림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눈치채고 있을 겁니다. 남자는 이 그림을 그린 에곤 실레(1890~1918)다. 남자 앞쪽에는 역시 벌거벗은 채 웅크리고 앉아 한 군데 멍하니 쳐다보는 여자가 있다. 여자의 다리 사이에는 귀여운 얼굴의 아기가 밝은 색 이불 속에 몸을 감싼 채 앉아 있다.1915년 에곤 실레는 에디트 할름스(Edith Harms)와 결혼한다. 에곤 실레는 결혼 후 각종 전시회에서 성공을 거두며 본격적인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얻게 된다. 그러나 직장에서의 성공보다 기쁜 소식은 아내 에디트가 임신했다는 사실이다. 시래는 기쁜 나머지 조카를 모델로 삼아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의 얼굴을 그려 작품 가족을 완성한다.실레의 작품에서 가족의 완전한 모습이 등장하는 것은 이 그림이 유일하다. 그만큼 시레에게 가족이 주는 의미는 컸다고 할 수 있다.당시 유럽에서 유행했던 무서운 위력의 스페인 독감에 아내 에디트가 감염되면서 실레는 아내와 뱃속의 아이까지 함께 잃어버린다. 그리고 아내를 극진히 간호하던 실레 역시 아내가 죽은 지 사흘 만에 사망한다. 그가 그린 <가족>의 모습은, 끝내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평소 건강하던 시레와 그의 아내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다른 감기 바이러스가 어린이나 노인처럼 면역시스템이 약한 사람에게 주로 감염되는 데 비해 스페인 감기는 드물게 2030대 초반의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 가장 기승을 부렸다.「스페인 독감(Spanishinfluenza)」은 1918년 3월부터 1920년 6월까지 제 1차 세계대전(1914~1918)과 함께 크게 유행한 바이러스 질환이다. 유럽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사람이 1,500만 명 정도였다. 그런데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사람은 2,100만 명에서 5,000만 명, 많으면 1억 명으로 추정된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이 넘는 약 6억 명이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무서운 전염병이었다.스페인 독감은 인류를 통째로 삼키듯 전 세계로 퍼졌다. 한국에서 '무5년 독감'으로 불리는 것도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 조선인 약 742만명(당시 조선총인구 약 1,670만명)이 스페인 독감에 걸려 이 중 약 1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염병으로 악화된 민심은 이듬해인 1919년에 3·1운동을 촉발한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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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가족사와 스페인 독감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지를 지킨 뭉크 녹색 양복을 입은 노년의 남자가 멍하니 앞을 보고 있다. 노인은 수척해 보여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꽤 괴로워 보인다. 뭉크의 작품 스페인 독감후 자화상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염병의 하나인 스페인 독감에서 회복한 뒤 에도우아루도·뭉크(1863~1944)가 그린 자신의 모습이다. 그림 그릴 당시 그는 50대 중반이었지만 병마와 처절한 사투를 벌였던 뭉크는 본인의 생각에도 대단했는지 자화상으로 남겨뒀다. 나중에 이 그림은 의사가 보는 감염학 교과서 표지에 실렸던 적도 있기 때문에 뭉크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상당히 기뻐했을 것 같다.뭉크는 노르웨이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며 그림을 통해 자신의 삶과 병을 표현했다. 노르웨이의 신화와 전설을 보면 유독 음침하고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피오르(빙하가 깎아 만든 U자형 계곡에 바닷물이 흘러들어 형성된 좁고 긴 만)와 빙하로 둘러싸여 오로라가 밤낮으로 북유럽 하늘에 빛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곳. 노르웨이는 그런 곳이다.뭉크의 하르다디헴은 고위 성직자였고, 다디헴 크리스티앙 뭉크는 군의관이었고, 나중에는 오슬로 근교의 빈민가에서 의사로 활동했다. 뭉크는 다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뭉크도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늘 감기에 걸렸다. 마달은 뭉크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다섯 살 때 당시 만연했던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로 인해 다디헴은 우울증으로 종교에 집착하는 증상을 보였다.그런 집을 돌본 건 누나 소피와 이모였다. 하지만 누나도 마냥달을 죽음으로 내몬 폐결핵으로 뭉크가 15세가 됐을 때 사망하고 1895년 동생 안드레아스가 결혼한 뒤 곧바로 급성 폐렴으로 사망한다. 이어 1898년에는 여동생 라우라가 정신분열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뭉크는 우리 가족에게는 병과 죽음밖에 없어요. 그것은 우리 피 속에 있다는 자조적인 말로 푸념했다고 한다.이런 뭉크의 가족사를 이해할 수 있는 책이 1896년 작 병든 아이입니다. 아픈 아이와 그를 간병하는 슬픔에 젖은 머플을 그린 그림이다. 간병하는 마냥달이 울고 있는지 기도하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뭉크 특유의 우울하고 어두운 주제의 그림이다.이 그림은 어릴 때 자신을 돌보던 언니 소피에를 떠올리며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당시 뭉크의 마네달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그림 속 간병인은 뭉크의 형제를 돌보고 있던 고모 카렌일 것이다.뭉크는 이런 불행한 가족사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그림을 그렸다. 평생 시달리던 천식도 극복했다. 알코올 중독과 신경쇠약에 따른 정신분열증이 나타났지만 9개월간 입원한 뒤 일상으로 돌아가 다시 그림을 그렸다.1918년 전 세계를 휩쓸고 수많은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까지 병약한 뭉크를 공격했지만 그는 스페인 독감도 마침내 극복했다. 많은 이들이 뭉크의 작품 전반에 흐르는 우울하고 불안한 정서 때문에 고흐(1853~1890)처럼 젊은 나이에 자살할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뭉크는 모든 예상을 넘어 팔순을 넘기고 살았고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다.- 문장의 박광혁_내과 전문의.전문의. 미술관에 간 의학자 저자 소설과 영화가 재난을 다루는 방법, 우리가 찾는 것은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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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을 선언했다. 코로나19가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유행하고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중국과 한국은 어느 정도 안정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유럽과 미국, 남미 등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경 봉쇄뿐 아니라 도시와 지역 간 이동을 막고 식당과 극장 등 인파가 몰리는 장소를 임시 폐쇄하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모든 병원을 임시 국유화하겠다고 선언했다.2001년 911테러로 시작된 21세기는 사스 신종 플루 마스 코로나 등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또 다른 시대를 맞고 있다. 20세기 최대의 공포가 핵전쟁이라면 지금 공포의 대상은 바이러스가 아닐까. 하나의 세계는커녕 모든 문을 닫고 생존에만 매달리는 아포칼립스의 새벽 같은 느낌이다.그러나 바이러스의 공포로 텅 빈 거리나 마스크를 쓴 많은 사람이 만들어낸 풍경은 드물지 않다. 이미 소설과 영화 등 다양한 문화예술에서 예견된 모습이다. 그 작품에는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보여줬어요. 당시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미래였지만 그들은 과거 또는 당대를 통해 재난을 겪었던 미래를 상상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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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알베르 카뮈페스트의 공포가 유럽을 강타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대부분 파괴됐다. 도시와 자연, 그리고 인간성까지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알베르 카뮈는 1947년 소설 페스트를 발표했다. 『 페스트 』는 전쟁의 와중에 쓰기 시작할 전염병이 번지는 프랑스의 오랑 시가 배경이다. 흑사병이 기승을 부리면 오랑시는 봉쇄된다. 그리고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모두 격리된다.치명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반응을 보인다. 기자 랭베일은 참극의 현장과 거리를 둔다. 자신은 오랑시의 일원도 아니고, 당사자가 아니면 몰래 손을 떼려고 한다. 파눌 신부는 신의 구원에 호소한다. 그러나 신이 전염병을 준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없다. 결국 병을 막는 것은 인간의 이성과 노력이다. 외부인 타루는 의사인 리유와 함께 사람들을 조직해 페스트에 맞서 싸운다.알베르 카뮈는 부조리한 세상에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 작가다. 페스트에서도 이미 창조된 세상을 거부하고 싸우는 것으로 진리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도망가고 누군가는 신에게 의지하지만 누군가는 싸운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리면 사람들의 저열한 본성이 나온다. 그러나 카뮈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인간 중에는 경멸하는 것보다 찬탄 하는 것이 많다」라고 한다.바이러스가 만연할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까.바이러스가 퍼지는 상황을 리얼하게 그린 영화로서는 스티븐·소더버그 감독의<컨테이젼>(2010)이 있다. 홍콩에 출장을 다녀온 베스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켜 죽는다. 세계 곳곳에서 베스와 같은 증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간다. <컨테이젼>에 나오는 바이러스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의 시작으로 추정되는 것처럼, 박쥐가 근원이다. 박쥐의 편을 먹고 자란 돼지를 요리한 요리사가 최초의 바이러스 감염자였다. 그가 접촉한 사실을 만진 사람들이 전염되면서 확산된다.신종 바이러스의 시작은 원숭이 낙타 닭 박쥐 등 동물이 대부분이었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남극이나 히말라야의 얼음 밑에서 잠들어 있던 고대 바이러스가 깨어난다는 보고도 있었다. <콘테이젼>을 보면 전염병이 확산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 지금 강조하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왜 필요한지도. 한국 영화 트래픽 헤이어 등 리얼한 스타일의 영화를 만든 스티븐 소더버그는 컨티전에서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마치 보고서처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컨테이전」이 리얼한 바이러스 리포트라면 「퍼펙트 센스」(2011)는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말한다. <퍼펙트센스>에 나오는 바이러스는 인간의 오감을 파괴한다. 후각 미각 청각 시각 순으로 감각이 사라지는 것이다. 요리를 만드는 요리사는 감각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요리를 해 줄지 고민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성과 어떻게 공감하고 하나가 되어야 할지 고민한다. 오감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현대사회에서 자신의 생각과 감성을 점점 좁혀가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한가지 생각만이 옳고 자신의 좋아하는 것만이 최고라고 강변하는 사람들. 지금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의 감각을 풍부하게 하고 다양한 생각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거대한 재난이 닥치면 일상의 감각을 잃고 결국 생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코맥 매카시의 소설 더 로드(2006)는 문명이 궤멸한 뒤 살아남는 대디와 아들의 이야기다. 대재앙이 일어난 뒤 세계는 아수라장이 됐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빈집이나 상점을 찾거나 서로 죽이고 물건을 빼앗는다. 원시시대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대재앙 이후 태어난 아들과 함께 끝없는 여정을 계속한다. 보다 나은, 더 나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암울하지만 결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어두운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미래를 보는 것, 희망을 찾는 것이 결국 재난의 시대에 우리가 할 일이다.-문:김봉석_대중문화평론가 -출처문화+서울 4월호 VOL.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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