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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툰에 빠진 대한민국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아이돌로 눈을 돌리다 ­
    카테고리 없음 2020. 6. 20.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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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에 대한 고정관념은 대략 이러했다.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해 글자수를 최대한 줄이는 대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한 그림과 말풍선으로 채워넣고, 현실세계에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군데군데 찢겨진 채 밥풀과 음료수로 뒤범벅된 대여점 한 켠의 빛 바랜 서적. 그런데 지하철이나 버스, 도서관에서 읽거나 직접 소장하기에는 왠지 눈치 보이던 어둠의 자식들은 탁월한 일부 작가의 힘에 의해 양지로 등장하게 되었다.​ 중국 고서의 재해석, 한국 고대사의 재조명, 음식에 대한 미시적 접근, 혹은 세계 문화와 풍속을 총망라하여 흑백이 아닌 화려한 칼라로 채색되어 양질의 단행본으로 꾸며진 만화는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면서 새로운 위상을 갖게 된다.​이윽고 예견된 순서처럼 게임, 드라마 등의 연관산업으로 외연을 확장해 나가지만 영화에 이르러서는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초기에는 만화와 똑 닮은 캐릭터를 내세우거나 도약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내세우려 했지만 영화는 만화적 상상력이 가지는 단점 역시 극명히 드러나는 매체이기 때문에 상상이 현실과 만나는 접점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시도들은 비현실적 서사구조란 죄명으로 외면 받고 말았다. ​2003년 인터넷의 대형 포털 사이트에 등장하기 시작한 웹툰은 플래시와 음향을 사용하면서 종이라는 형식의 제한을 뛰어 넘어 무너지던 종이만화를 조금씩 대체하게 되었다. 웹툰 작가는 일방통행의 텍스트 매체에서 인터랙티브한 인터넷으로 둥지를 옮긴 사람도 있지만 자생적으로 그리고 아직까지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영향력을 확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단편작이던 <다세포소녀>를 무리하게 하나의 줄거리로 옭아 메려던 2006년 웹툰의 첫 영화 시도는 비참하게 끝을 맺었다.2013년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흥행성공은 다소 의외이다. 동시에 개봉한 많은 블록버스터의 틈새에서 예상외의 행보를 거듭한 요인은 원작의 탄탄한 구조나 섬세한 배경설명 및 감정선의 흐름을 생략한 채 꽃미남 주인공들이 벌이는 액션과 이해하기 어려운 눈물샘에 열광하는 팬덤 문화에 의존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엄청난 분량의 원작을 2시간 남짓 압축시킨 영화는 왜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미국 드라마의 인기를 영화화에 쉽게 써먹지 않는지 설명해 준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왜 굳이 바보행세를 하는지, 왜 길에서 배변을 했는지는 결코 중요하지 않다. ​푸시업을 할 때 드러나는 복근과 비 맞으며 흘리는 눈물 몇 방울이면 ‘그’가 있기에 충분하다. <전설의 주먹> 역시 케이블 TV ‘주먹이 운다 ’의 포맷을 차용하여 40대 가장의 마지막 승부를 그려내고 있지만 식상한 결말은 휴먼 액션이라 명명된 명불허전 격투기의 체취를 그나마 퇴색시키고 만다.​독창적인 그림체를 탄탄한 줄거리로 만회하는 강풀 작가는 웹툰의 최강자 중 하나이다. 현존하는 전직 대통령 제거라는 불경스러움을 구현한 <26년>은 시대적 흐름과 절묘하게 맞닿아 많은 사람의 공감을 자아냈다. 편집된 과거를 잊지 못하며 아직도 거짓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반증이리라. 노인의 획일화된 관점이 아닌 보편 타당한 인간의 시점에서 사랑을 설파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달동네 언덕과 보름달이라는 상승과 하강, 끝과 새로운 시작의 은유를 자연스럽게 영화 속에서 녹아내면서 인생은 변화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고 말한다. ​작가 자신이 원작과 너무도 달라졌다고 말한 <순정만화>는 결국 2차원에서 3차원 매체로 변하는 시점의 정서를 포착하지 못했음이 패착임을 실토하지만 키스 장면 하나 없이도 연애와 사랑의 차이를 조용히 알려주고,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은 추억의 조각에 매몰되었다가 현실로 빠져 나온 여인이 구원을 받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심오한 에세이를 선사하는 윤태호 작가의 <이끼>는 음과 양,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지는 인간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빛이 잘 들지 않는 음습한 곳에서만 서식하는 이끼는 양지가 되면 사라진다. 감독의 과도한 욕심 때문에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전혀 다르게 설정되어 결국 스릴러 영화가 되었지만 마을의 주도권을 둘러싼 두 명의 악당 사이의 다툼과 그 부산물은 이끼의 의미를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어 그나마 마음의 위안을 삼을 만하다.​바둑의 한 수를 짤막한 인생의 잠언으로 소화해 낸 <미생>은 드라마이지만 영화 못지않은 감동과 현실감을 선사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공감하는 약육강식의 사회생활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실감나게 묘사하여 직장생활에 기적, 환상, 우연은 개입될 수가 없다는 생생한 진리를 연기자들을 통해 매회, 한 두 마디의 명언으로 재생산해내고 있다. ​완전히 죽지는 않았지만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남은 상태도 아닌 미생(未生)은 완성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바둑돌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어깨 쳐진 임시직들의 비상을 암시할 수도 있다.​88만 원 세대를 연기하는 장그래 역의 임시완은 아이돌 그룹 멤버가 감내해야 하는 피상적이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철새와 같다는 대중의 힐난을 가볍지 않은 몸짓으로 묵묵히 이겨내고 있다. <변호인>에서 보여준 깊은 눈매와 지난한 몸짓 연기는 그가 TV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가수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원래 우상(偶像)을 뜻하던 ‘아이돌(idol) ’이란 단어가 우리나라에서는 ‘십대가 숭배하는 가수 ’란 의미가 되었다. 90년대 후반부터 다년간 연예기획사에서 혹독한 연습생 훈련을 받고 가요계에 데뷔했던 10대 중후반의 ‘아이들 ’은 인디 음악을 하는 가수와는 달리 성공 자체에 대한 열망이 매우 강할 것이며 편안한 가정, 진정한 친구와 학창시절을 혹시 펼쳐질지도 모를 밝은 앞날과 담보해야 하기에 스스로 ‘아이돌 ’이라 규정짓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떼를 지어 가요계에 데뷔한 그들이 홀로 뮤지컬이나 영화, 드라마 등의 활동무대로 넘어가는 시도는 몸과 이름을 파는 자본주의의 최정점에서 보면 일종의 노후 보장책이라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을 수도 있다. 영화의 흥행 성공에 있어 거미줄처럼 얽힌 프레임이 모두 완벽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스타 연예인 한 명의 티켓파워가 이 모든 것을 상쇄시킬 수도 있다.​영화를 사랑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히 말하니 그대 ‘ 아이돌 ’이여, 스타가 아닌 진정한 배우로 기억되길 바란다면 연기에 뼈를 묻고 이 길 이외에는 절대 한 눈을 팔지 않겠다는 각오로 노력해주길 빈다.​ 인기는 짧으나 연기는 오래 간다는 것과 인생은 한 우물을 파는 자의 것이란 것을 잊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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